[안중근 열사 유묵 귀환] 1910년 3월 사형 앞두고 쓴 '장탄일성 선조일본'

안중근 의사 장탄일성 선조일본 썸네일
안중근 의사의 '장탄일성 선조일본'/이미지=경기도

광복 80주년을 앞둔 지금, 경기도가 중심이 되어 안중근 의사의 서예 유산을 국내로 돌려오는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그중 1910년 뤼순 감옥에서 집필된 명구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弔日本)'은 이미 귀환을 마쳤습니다.

또 다른 걸작 '독립(獨立)'은 소장처와의 협의가 진행 중입니다. 두 작품은 항일의지와 동양평화 관념을 응축한 '글씨 이상의 역사'로 평가받습니다.

본 글은 8월 14일자 보도를 토대로, 작품의 제작 배경과 의미, 소장·전시 이력, 향후 보존·활용 계획을 정리했습니다. 국보급 가치로 꼽히는 이 유묵들은 왜 지금 우리 곁으로 돌아와야 하는지, 그리고 돌아온 뒤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전문가의 시선으로 풀어봅니다.

귀환 프로젝트 개요

경기도는 국내외 소장 자료 조사, 진위 및 보존 상태 검증, 소유권·위탁관리 조건 협의 등 복합적인 절차를 거쳐 유묵 귀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는 공공기관의 행정력뿐 아니라 민간 연구자·전문가 네트워크, 그리고 해외 소장자와의 신뢰 형성이 필수적입니다. 작품이 국내에 들어온 뒤에는 안전한 보존 환경, 전문 복원, 학술 전시·출판을 통해 공공 가치를 극대화합니다.

장탄일성선조일본:115년만의 귀환

제작 1910년 3월, 뤼순 감옥 수감 중 / 규격 135.5 × 41.5cm

문구 뜻 "크게 길게 탄식하며, 일본의 멸망을 미리 조문한다." 엄혹한 상황에서도 역사 인식과 정의감, 동양 평화관을 굳건히 밝힌 구절입니다.

소장 경위 당시 안중근 의사가 일본 제국 관동도독부 최고위급 간부 계열에 직접 건넨 뒤 후손 가계를 통해 전승되었다가, 국내외 조사를 거쳐 경기도가 귀환을 성사시켰습니다. 100년 넘는 비공개 기간을 지나 고국에서 첫 공개를 맞이했다는 점에서 사료적 희소성이 큽니다.

의의 힘찬 필획과 대형 구성이 주는 현장성, 명징한 어구가 결합된 걸작입니다. ‘동양지사’의 자의식이 명확히 드러나, 의거의 목적을 개인 원한이 아닌 역사·문명 차원의 문제로 확장하는 안 의사의 시각을 보여줍니다. 연구·교육·전시 측면에서 모두 국보급 가치가 논의되는 이유입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독립'

안중근 열사의 '독립'
안중근 열사의 '독립'

제작 1910년 2월, 뤼순 감옥 수감 중 / 규격 31.5 × 66cm

의미 단 한 단어 ‘獨立’에 응축된 결연함. 국권 회복을 향한 신념과 애국의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글자 구성은 단정하면서도 기세가 살아 있어, 의연함과 단호함을 동시에 전합니다.

소장 이력 안중근 의사가 당시 감옥 간수에게 직접 건넸고, 간수의 조카를 거쳐 교토 간센지(願船寺)에 보관, 이후 류코쿠대학 도서관으로 관리 위탁(2010. 6)되어 현재까지 일본에 있습니다. 

2000년 아사히 신문 보도로 널리 알려졌고, 예술의전당·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 국내 주요 전시에서 고화질 이미지·복제본으로 소개되며 연구가 축적되었습니다.

귀환 현황 경기도는 소장처와 협의 채널을 열고 법·윤리 기준을 충족하는 방식(우선 매입, 장기 대여, 교환·공동 소장 등)을 놓고 단계적 절충을 진행 중입니다. 작품 상태 점검과 운송·보험·보존 조건을 문서화하는 과정이 동반되며, 귀환 이후 공공 전시·교육 활용 계획도 함께 설계합니다.

보존·연구·공유의 선순환

보존 귀환 직후에는 산성화 억제, 온·습도 제어, 비파괴 분석(섬유·안료·묵 성분), 디지털 고해상 기록 등 ‘안전한 수명 연장’이 최우선입니다. 작품의 종·비단 소재, 접착·장황 상태에 따라 맞춤형 복원 계획을 수립합니다.

연구 글자 구성·운필·제발(題跋)·도장 등 서예학적 분석과, 동시기 유묵·서간·신문 기사 대조를 통해 진위·연대를 교차 검증합니다. 아울러 국제 학술 협력으로 일본·중국 소장처 자료까지 열람하며 작품의 ‘이동 경로’ 사료화를 진행합니다.

공유 장기전시와 순회전, 어린이·청소년 대상의 체험형 프로그램(문구 탁본, 디지털 캘리그래피), 온라인 3D 뷰어 공개 등으로 접근성을 높입니다. 단발성 기념행사에서 끝나지 않고, 지역 박물관·도서관·학교와 연동해 ‘살아 있는 역사 교육’ 장으로 확장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국보급: 예술성·역사성·희소성

두 작품 모두 제작 시기·장소·상황이 명확하고, 필획·장법·제발이 남아 있는 드문 사례입니다. 무엇보다 텍스트 자체가 역사 선언문에 가깝습니다. 

‘장탄일성 선조일본’은 명징한 메시지와 대작의 위용, ‘독립’은 한 글자의 응축미로 각각 최고 수준의 예술성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100여 년의 소장 경로가 비교적 뚜렷해 사료적 신뢰도 또한 높습니다.

역사가 된 작품, 미래로 이어지다

‘장탄일성 선조일본’의 귀환은 출발점입니다. ‘독립’까지 온전히 돌아온다면, 우리는 글씨 한 줄에서 시작된 신념이 오늘의 시민교육·평화 담론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경기도의 귀환 프로젝트는 바로 그 다리를 놓는 일입니다. 한 세기를 돌아온 유묵이 한국 사회의 지적 자산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공적 보존과 개방, 연구와 참여가 함께 가야 합니다.